요한복음 17장 20-23절 고친 이력
판 #1141 AI 초안 · 2026-10-04 15:50
요약: AI 초안 (claude-opus-5-5)
앞 판과 달라진 곳
+## 문맥
+[[요한복음]] 17장은 예수가 마지막 만찬 뒤 제자들에게 작별의 가르침(13~16장)을 마치고, 체포되기(18장) 직전에 아버지께 드린 기도이다. 흔히 '대제사장적 기도'라 부른다. 기도는 대체로 세 부분으로 나뉜다. 1~5절은 예수 자신을 위한 기도이고, 6~19절은 곁에 있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이며, 20~26절은 앞으로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한 기도이다. 20절의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은 제자들의 증언을 듣고 믿게 될 후대 신자들을 가리킨다. 이 대목에서 기도의 대상이 눈앞의 제자에서 이후의 모든 교회로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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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석
+- **삼위일체적 읽기**: 신자들의 하나됨은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본으로 삼는다. 많은 해석자는 [[삼위일체]] 안의 상호 내주(서로가 서로 안에 거함)를 교회 일치의 원형으로 읽는다.
+- **선교적 읽기**: 하나됨의 목적은 세상이 "믿게" 하고 "알게" 하는 데 있다. 이 점에서 교회의 일치를 복음 증언의 조건으로 본다. 분열한 교회는 세상에 복음을 믿을 만하게 보여 주기 어렵다는 주장이 이 구절에 기대어 자주 제기된다.
+- **에큐메니칼 진영의 읽기**: [[에큐메니칼 운동]]은 "다 하나가 되어"를 눈에 보이는 교회 일치를 추구할 근거로 삼아 왔다. 라틴어 번역 "ut omnes unum sint"(모두 하나가 되게)는 여러 교회 연합 운동의 표어로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보수 복음주의·개혁주의의 읽기**: 이 하나됨을 조직의 통합이 아니라, 같은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한 신자들의 영적 일치로 본다. 앞의 17절 "진리로 거룩하게"와 이어 읽으며, 교리의 일치 없는 연합은 이 기도의 뜻이 아니라고 해석한다.
+- **"영광"의 뜻**: 22절에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주었다는 "영광"이 무엇인지를 두고 해석이 나뉜다. 아버지를 드러내는 계시, 십자가를 통해 나타나는 영광, 성령 등이 그 예이다. [[정교회]] 전통에서는 이를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신화(神化, theosis)와 연결해 읽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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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쟁과 쟁점
+쟁점은 구절의 뜻보다 적용 방식에 있다. 한국에서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참여 문제가 [[한국 장로교 분열|1959년 장로교 분열]]의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였다. 이후 [[WCC 논쟁]]에서 참여하는 쪽은 이 구절을 연합의 근거로 든다. 반대하는 쪽은 신학적 차이를 덮은 연합은 이 기도의 뜻과 다르다고 반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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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본 문제도 있다. 21절 "우리 안에" 부분은 사본에 따라 '하나'라는 말이 한 번 더 들어 있기도 하고 빠져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전체 뜻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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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교회에서
+여러 교단이 함께 모이는 [[부활절 연합예배]]나 연합기관 행사처럼 일치를 강조하는 자리에서 자주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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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읽을 구절
+- 요한복음 17:11 (제자들을 위한 기도 속 하나됨의 간구)
+- [[요한복음 10장 16절|요한복음 10:16]]
+- [[에베소서 4장 3-6절|에베소서 4:3-6]]
+- [[고린도전서 1장 10절|고린도전서 1:10]]
+- [[고린도전서 12장 13절|고린도전서 12:13]]
이 판의 전체 내용
문맥
요한복음 17장은 예수가 마지막 만찬 뒤 제자들에게 작별의 가르침(13~16장)을 마치고, 체포되기(18장) 직전에 아버지께 드린 기도이다. 흔히 '대제사장적 기도'라 부른다. 기도는 대체로 세 부분으로 나뉜다. 1~5절은 예수 자신을 위한 기도이고, 6~19절은 곁에 있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이며, 20~26절은 앞으로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한 기도이다. 20절의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은 제자들의 증언을 듣고 믿게 될 후대 신자들을 가리킨다. 이 대목에서 기도의 대상이 눈앞의 제자에서 이후의 모든 교회로 넓어진다.
해석
- 삼위일체적 읽기: 신자들의 하나됨은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본으로 삼는다. 많은 해석자는 삼위일체 안의 상호 내주(서로가 서로 안에 거함)를 교회 일치의 원형으로 읽는다.
- 선교적 읽기: 하나됨의 목적은 세상이 "믿게" 하고 "알게" 하는 데 있다. 이 점에서 교회의 일치를 복음 증언의 조건으로 본다. 분열한 교회는 세상에 복음을 믿을 만하게 보여 주기 어렵다는 주장이 이 구절에 기대어 자주 제기된다.
- 에큐메니칼 진영의 읽기: 에큐메니칼 운동은 "다 하나가 되어"를 눈에 보이는 교회 일치를 추구할 근거로 삼아 왔다. 라틴어 번역 "ut omnes unum sint"(모두 하나가 되게)는 여러 교회 연합 운동의 표어로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보수 복음주의·개혁주의의 읽기: 이 하나됨을 조직의 통합이 아니라, 같은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한 신자들의 영적 일치로 본다. 앞의 17절 "진리로 거룩하게"와 이어 읽으며, 교리의 일치 없는 연합은 이 기도의 뜻이 아니라고 해석한다.
- "영광"의 뜻: 22절에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주었다는 "영광"이 무엇인지를 두고 해석이 나뉜다. 아버지를 드러내는 계시, 십자가를 통해 나타나는 영광, 성령 등이 그 예이다. 정교회 전통에서는 이를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신화(神化, theosis)와 연결해 읽기도 한다.
논쟁과 쟁점
쟁점은 구절의 뜻보다 적용 방식에 있다. 한국에서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참여 문제가 1959년 장로교 분열의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였다. 이후 WCC 논쟁에서 참여하는 쪽은 이 구절을 연합의 근거로 든다. 반대하는 쪽은 신학적 차이를 덮은 연합은 이 기도의 뜻과 다르다고 반론한다.
사본 문제도 있다. 21절 "우리 안에" 부분은 사본에 따라 '하나'라는 말이 한 번 더 들어 있기도 하고 빠져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전체 뜻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한국 교회에서
여러 교단이 함께 모이는 부활절 연합예배나 연합기관 행사처럼 일치를 강조하는 자리에서 자주 인용된다.
함께 읽을 구절
- 요한복음 17:11 (제자들을 위한 기도 속 하나됨의 간구)
- 요한복음 10:16
- 에베소서 4:3-6
- 고린도전서 1:10
- 고린도전서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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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1 | 2026-10-04 15:50 | AI 초안 | AI 초안 (claude-opus-5-5) | 1,5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