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와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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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는 [[구약성경]] 소예언서 열두 권 가운데 열한 번째 책이며 모두 14장이다. 소예언서는 분량이 비교적 짧은 예언서들을 묶어 부르는 말이다. '스가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장 1절은 예언자 스가랴를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로 소개한다. [[천주교]] 성경은 이 이름을 '즈카르야'로 적는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는 [[누가복음]]에 나오는 다른 인물이며, 한국어 성경에서는 '사가랴'로 표기해 구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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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적·역사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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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는 [[학개]]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다. 1장 1절에 따르면 페르시아 왕 다리오 2년, 곧 기원전 520년 무렵에 예언을 시작했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은 이때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짓는 일을 멈춘 상태였고, 스가랴는 이들에게 공사를 재개하도록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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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내용상 두 부분으로 나뉜다.
+- **1~8장**: 여덟 가지 밤의 환상이 중심이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 스룹바벨이 등장하고, "내 종 싹"(3:8)이라는 메시아적 표현이 나온다.
+- **9~14장**: 장래의 왕과 목자, 그리고 "그날"에 일어날 일을 다루는 예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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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부분은 문체와 시대 배경이 달라 보인다. 그래서 비평학계에서는 9~14장을 다른 저자의 글로 보는 견해가 널리 퍼져 있다. 반면 한국의 보수적 교단 신학교들은 대체로 스가랴 한 사람의 저작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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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은 스가랴를 여러 번 인용한다.
+- 나귀 새끼를 탄 왕(9:9)은 마태복음 21:5와 요한복음 12:15에 인용된다.
+- 은 삼십(11:12-13)은 마태복음 27:9-10의 예언과 연결된다.
+- 찌른 자를 바라봄(12:10)은 요한복음 19:37에 인용된다.
+-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짐(13:7)은 마태복음 26:31에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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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교회에서의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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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의 스가랴 4:6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는 한국 교회에서 매우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다. 이 구절과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는 개척 예배, [[교회 건축]], [[헌당식]] 설교에 흔히 쓰인다. 스룹바벨의 성전 재건 이야기가 이런 자리와 잘 맞기 때문이다. [[종려주일]]에는 9:9이, [[고난주간]]에는 12:10과 13:7이 자주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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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의 해석은 교단과 신학 전통에 따라 다르다.
+- [[세대주의]] 입장에서는 감람산이 갈라지는 장면(14:4)을 [[재림]] 때 문자 그대로 이루어질 사건으로 보고, [[천년왕국]]과 연결해 읽는다. 일부 순복음·침례교 계열 설교에서 이런 해석을 볼 수 있다.
+- [[언약신학]]과 개혁주의 전통의 장로교 신학자들은 대체로 이 장면을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그린 상징적 표현으로 해석한다.
이 판의 전체 내용
정의와 뜻
스가랴는 구약성경 소예언서 열두 권 가운데 열한 번째 책이며 모두 14장이다. 소예언서는 분량이 비교적 짧은 예언서들을 묶어 부르는 말이다. '스가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장 1절은 예언자 스가랴를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로 소개한다. 천주교 성경은 이 이름을 '즈카르야'로 적는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는 누가복음에 나오는 다른 인물이며, 한국어 성경에서는 '사가랴'로 표기해 구별한다.
성경적·역사적 배경
스가랴는 학개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다. 1장 1절에 따르면 페르시아 왕 다리오 2년, 곧 기원전 520년 무렵에 예언을 시작했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은 이때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짓는 일을 멈춘 상태였고, 스가랴는 이들에게 공사를 재개하도록 격려했다.
책은 내용상 두 부분으로 나뉜다.
- 1~8장: 여덟 가지 밤의 환상이 중심이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 스룹바벨이 등장하고, "내 종 싹"(3:8)이라는 메시아적 표현이 나온다.
- 9~14장: 장래의 왕과 목자, 그리고 "그날"에 일어날 일을 다루는 예언이다.
두 부분은 문체와 시대 배경이 달라 보인다. 그래서 비평학계에서는 9~14장을 다른 저자의 글로 보는 견해가 널리 퍼져 있다. 반면 한국의 보수적 교단 신학교들은 대체로 스가랴 한 사람의 저작으로 본다.
신약성경은 스가랴를 여러 번 인용한다.
한국 교회에서의 실제
개역개정의 스가랴 4:6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는 한국 교회에서 매우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다. 이 구절과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는 개척 예배, 교회 건축, 헌당식 설교에 흔히 쓰인다. 스룹바벨의 성전 재건 이야기가 이런 자리와 잘 맞기 때문이다. 종려주일에는 9:9이, 고난주간에는 12:10과 13:7이 자주 읽힌다.
14장의 해석은 교단과 신학 전통에 따라 다르다.
- 세대주의 입장에서는 감람산이 갈라지는 장면(14:4)을 재림 때 문자 그대로 이루어질 사건으로 보고, 천년왕국과 연결해 읽는다. 일부 순복음·침례교 계열 설교에서 이런 해석을 볼 수 있다.
- 언약신학과 개혁주의 전통의 장로교 신학자들은 대체로 이 장면을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그린 상징적 표현으로 해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