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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3장 34절 고친 이력

판 #656 AI 초안 · 2026-10-04 15:01

요약: AI 초안 (claude-opus-5-5)

앞 판과 달라진 곳

+## 문맥
+누가복음은 예수가 해골이라는 곳에서 두 행악자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 바로 다음에 이 기도를 둔다. 기도 뒤에는 병사들이 그의 옷을 제비 뽑아 나누는 장면이 이어진다(시편 22:18). 사복음서의 십자가 말씀을 모은 '가상칠언'에서 보통 첫째 말씀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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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석
+- **용서의 대상**: 기도의 "저희"가 누구인지 여러 읽기가 있다. 직접 못 박은 로마 병사들로 보는 견해, 예수를 넘겨준 유대 지도자들과 무리까지 포함한다고 보는 견해, 나아가 그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모든 인류로 넓히는 견해가 있다.
+- **"알지 못함"**: 무지가 죄를 없애 주지는 않지만, 그 무지 때문에 용서를 구할 여지가 있다는 뜻으로 읽는다. 베드로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라고 말한 대목(사도행전 3:17)과 이어 읽기도 한다.
+- **원수 사랑의 실천**: 예수가 평지 설교에서 가르친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누가복음 6:28)를 몸소 실천한 장면으로 본다. 스데반이 순교하며 같은 기도를 드린 것(사도행전 7:60)도 이 본보기를 따른 것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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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쟁과 쟁점
+이 기도는 일부 이른 시기의 중요한 사본(파피루스 사본과 바티칸 사본 등)에 없고, 시내 사본에는 처음에 있었다가 지워진 흔적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일부 현대 번역은 괄호나 난외주로 표시한다. 다만 많은 사본과 초대 교부들이 이 기도를 알고 있었고, 용서의 주제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전체의 흐름과 잘 맞는다는 이유로 진정성을 지지하는 학자도 많다. 유대인에 대한 용서를 불편하게 여긴 후대 필사자가 지웠을 가능성을 드는 견해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 기도를 누가 전승의 일부로 보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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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교회에서
+[[고난주간]] 예배, 특히 성금요일 가상칠언 묵상의 첫 본문으로 쓰인다. 한국 교회사에서는 자기 아들들을 죽인 사람을 양자로 삼은 [[손양원]] 목사의 이야기가 이 구절과 함께 자주 설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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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읽을 구절
+- 사도행전 7:60
+- 누가복음 6:27-28
+- 이사야 53:12
+- 사도행전 3:17
이 판의 전체 내용

문맥

누가복음은 예수가 해골이라는 곳에서 두 행악자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 바로 다음에 이 기도를 둔다. 기도 뒤에는 병사들이 그의 옷을 제비 뽑아 나누는 장면이 이어진다(시편 22:18). 사복음서의 십자가 말씀을 모은 '가상칠언'에서 보통 첫째 말씀으로 꼽힌다.

해석

  • 용서의 대상: 기도의 "저희"가 누구인지 여러 읽기가 있다. 직접 못 박은 로마 병사들로 보는 견해, 예수를 넘겨준 유대 지도자들과 무리까지 포함한다고 보는 견해, 나아가 그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모든 인류로 넓히는 견해가 있다.
  • "알지 못함": 무지가 죄를 없애 주지는 않지만, 그 무지 때문에 용서를 구할 여지가 있다는 뜻으로 읽는다. 베드로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라고 말한 대목(사도행전 3:17)과 이어 읽기도 한다.
  • 원수 사랑의 실천: 예수가 평지 설교에서 가르친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누가복음 6:28)를 몸소 실천한 장면으로 본다. 스데반이 순교하며 같은 기도를 드린 것(사도행전 7:60)도 이 본보기를 따른 것으로 읽힌다.

논쟁과 쟁점

이 기도는 일부 이른 시기의 중요한 사본(파피루스 사본과 바티칸 사본 등)에 없고, 시내 사본에는 처음에 있었다가 지워진 흔적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일부 현대 번역은 괄호나 난외주로 표시한다. 다만 많은 사본과 초대 교부들이 이 기도를 알고 있었고, 용서의 주제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전체의 흐름과 잘 맞는다는 이유로 진정성을 지지하는 학자도 많다. 유대인에 대한 용서를 불편하게 여긴 후대 필사자가 지웠을 가능성을 드는 견해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 기도를 누가 전승의 일부로 보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한국 교회에서

고난주간 예배, 특히 성금요일 가상칠언 묵상의 첫 본문으로 쓰인다. 한국 교회사에서는 자기 아들들을 죽인 사람을 양자로 삼은 손양원 목사의 이야기가 이 구절과 함께 자주 설교된다.

함께 읽을 구절

판때고친 사람요약글자 수
#6562026-10-04 15:01AI 초안AI 초안 (claude-opus-5-5)1,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