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2장 19-20절 고친 이력
판 #933 AI 초안 · 2026-10-04 15:37
요약: AI 초안 (claude-opus-5-5)
앞 판과 달라진 곳
+## 문맥
+누가복음 22장은 예수가 잡히기 직전 [[유월절]] 저녁에 사도들과 함께 식사한 장면을 기록한다. 이 식사를 흔히 최후의 만찬이라 부른다. 예수는 고난을 받기 전에 이 유월절을 함께 먹기를 원했다고 말한 뒤(누가복음 22:15) 떡과 잔을 나누며 그 의미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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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에는 다른 복음서와 달리 잔이 두 번 나온다(누가복음 22:17, 22:20). 떡에 대해 "나를 기념하라"고 한 말과 잔을 "새 언약"이라고 한 표현은 마태복음·마가복음보다 바울이 전한 [[고린도전서 11장 20-26절|고린도전서 11장]]의 [[성찬]] 전승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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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석
+여러 교회가 이 말씀을 성찬을 세운 근거로 읽는다. 다만 "내 몸이라"는 말에서 그리스도가 성찬에 어떻게 함께하는지(임재)를 두고 견해가 갈린다.
+- **천주교의 읽기**: 사제가 축성하면 떡과 포도주의 실체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뀐다고 가르친다. 이를 화체설이라 한다.
+- **루터교의 읽기**: [[마르틴 루터]]를 따라, 떡과 포도주는 그대로 있으면서 그 "안에, 함께, 아래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실제로 임재한다고 본다.
+- **개혁교회·장로교의 읽기**: [[장 칼뱅]]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따라, 그리스도가 성령을 통해 영적으로 임재하고 믿음으로 받는 사람이 실제로 그리스도와 교제한다고 본다.
+- **기념설의 읽기**: [[울리히 츠빙글리]]에게서 비롯된 견해다. "기념하라"를 강조하여 성찬을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하고 고백하는 예식으로 본다. [[침례교]]를 비롯한 여러 교회가 이 이해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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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언약"이라는 말은 예레미야가 약속한 새 언약과 시내산 언약의 "언약의 피"(출애굽기 24:8)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예수의 죽음을 새 [[언약]]을 세우는 희생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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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쟁과 쟁점
+- **사본 문제**: 19절 후반 "너희를 위하여 주는"부터 20절 끝까지는 베자 사본 등 일부 서방 계열 사본에 없다. 19세기 학자 웨스트코트와 호트는 이 부분을 후대에 덧붙인 것으로 의심했고, 20세기 중반 일부 영어 번역은 이 부분을 본문에서 빼기도 했다. 그러나 초기 파피루스를 포함한 대다수 사본에 이 부분이 있다. 그래서 오늘날 대부분의 비평본과 한국어 성경은 이 부분을 본문으로 싣는다.
+- **임재 방식**: 위의 견해 차이는 종교개혁 시기 [[성찬 논쟁]]의 핵심이었다. 1529년 마르부르크 회담에서 루터와 츠빙글리는 이 문제에 합의하지 못했다.
+- **"이를 행하라"의 범위**: 코로나19 시기에 성찬을 비대면으로 행할 수 있는지를 두고 교단마다 판단이 엇갈렸다. 자세한 내용은 [[온라인 성찬]] 문서에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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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의 성찬식에서는 집례자가 이 구절이나 고린도전서 11:23-26을 '제정의 말씀'으로 읽은 뒤 떡과 잔을 나누는 경우가 많다. 성찬상에 "나를 기념하라"는 문구를 새겨 두기도 한다. 성찬을 얼마나 자주 행하는지는 교단과 교회마다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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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읽을 구절
+- 마태복음 26:26-28
+- 마가복음 14:22-25
+- 고린도전서 11:23-26
+- [[예레미야 31장 34절|예레미야 31:31-34]]
+- [[히브리서 8장 6-13절|히브리서 8:6-13]]
이 판의 전체 내용
문맥
누가복음 22장은 예수가 잡히기 직전 유월절 저녁에 사도들과 함께 식사한 장면을 기록한다. 이 식사를 흔히 최후의 만찬이라 부른다. 예수는 고난을 받기 전에 이 유월절을 함께 먹기를 원했다고 말한 뒤(누가복음 22:15) 떡과 잔을 나누며 그 의미를 설명한다.
누가복음에는 다른 복음서와 달리 잔이 두 번 나온다(누가복음 22:17, 22:20). 떡에 대해 "나를 기념하라"고 한 말과 잔을 "새 언약"이라고 한 표현은 마태복음·마가복음보다 바울이 전한 고린도전서 11장의 성찬 전승에 더 가깝다.
해석
여러 교회가 이 말씀을 성찬을 세운 근거로 읽는다. 다만 "내 몸이라"는 말에서 그리스도가 성찬에 어떻게 함께하는지(임재)를 두고 견해가 갈린다.
- 천주교의 읽기: 사제가 축성하면 떡과 포도주의 실체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뀐다고 가르친다. 이를 화체설이라 한다.
- 루터교의 읽기: 마르틴 루터를 따라, 떡과 포도주는 그대로 있으면서 그 "안에, 함께, 아래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실제로 임재한다고 본다.
- 개혁교회·장로교의 읽기: 장 칼뱅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따라, 그리스도가 성령을 통해 영적으로 임재하고 믿음으로 받는 사람이 실제로 그리스도와 교제한다고 본다.
- 기념설의 읽기: 울리히 츠빙글리에게서 비롯된 견해다. "기념하라"를 강조하여 성찬을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하고 고백하는 예식으로 본다. 침례교를 비롯한 여러 교회가 이 이해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 언약"이라는 말은 예레미야가 약속한 새 언약과 시내산 언약의 "언약의 피"(출애굽기 24:8)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예수의 죽음을 새 언약을 세우는 희생으로 읽는다.
논쟁과 쟁점
- 사본 문제: 19절 후반 "너희를 위하여 주는"부터 20절 끝까지는 베자 사본 등 일부 서방 계열 사본에 없다. 19세기 학자 웨스트코트와 호트는 이 부분을 후대에 덧붙인 것으로 의심했고, 20세기 중반 일부 영어 번역은 이 부분을 본문에서 빼기도 했다. 그러나 초기 파피루스를 포함한 대다수 사본에 이 부분이 있다. 그래서 오늘날 대부분의 비평본과 한국어 성경은 이 부분을 본문으로 싣는다.
- 임재 방식: 위의 견해 차이는 종교개혁 시기 성찬 논쟁의 핵심이었다. 1529년 마르부르크 회담에서 루터와 츠빙글리는 이 문제에 합의하지 못했다.
- "이를 행하라"의 범위: 코로나19 시기에 성찬을 비대면으로 행할 수 있는지를 두고 교단마다 판단이 엇갈렸다. 자세한 내용은 온라인 성찬 문서에서 다룬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의 성찬식에서는 집례자가 이 구절이나 고린도전서 11:23-26을 '제정의 말씀'으로 읽은 뒤 떡과 잔을 나누는 경우가 많다. 성찬상에 "나를 기념하라"는 문구를 새겨 두기도 한다. 성찬을 얼마나 자주 행하는지는 교단과 교회마다 다르다.
함께 읽을 구절
| 판 | 때 | 고친 사람 | 요약 | 글자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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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3 | 2026-10-04 15:37 | AI 초안 | AI 초안 (claude-opus-5-5) | 1,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