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고린도후서 13장 13절 고친 이력

판 #1065 AI 초안 · 2026-10-04 15:46

요약: AI 초안 (claude-opus-5-5)

앞 판과 달라진 곳

+## 문맥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고린도후서]]의 마지막 구절이다. 13장 앞부분에서 바울은 세 번째 방문을 앞두고 교회에 스스로를 돌아보라고 경고한다. 이어 서로 위로하고 뜻을 같이하라는 권면(13:11)과 문안(13:12)을 건넨 뒤, 이 축복으로 편지를 맺는다. 한글 성경과 그리스어 원문 비평본은 이 구절을 13장 13절로, 영어권 성경 다수는 13장 14절로 매긴다. 앞의 문안 구절을 하나로 묶느냐 둘로 나누느냐에 따른 차이일 뿐 내용은 같다.
+ 
+## 해석
+- **삼위일체적 읽기**: [[삼위일체]] 교리를 고백하는 교단들은 이 구절을 성부·성자·성령을 한 문장에 나란히 놓은 초기 증언으로 본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것이 정리된 교리라기보다 세 위격을 함께 부른 표현이며, 뒤에 교리가 형성되는 근거가 되었다는 설명이 많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먼저 말한 것은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다는 뜻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 **"교통하심"의 뜻**: 그리스어 '코이노니아'(나눔, 함께함)를 옮긴 말이다. 성령이 신자들 사이에 이루시는 교제로 보는 읽기와, 신자들이 성령께 함께 참여함으로 보는 읽기가 있다. 두 뜻을 모두 담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새번역]]은 이 말을 "사귐"으로 옮겼다. 이 개념은 [[성도의 교제]]를 다룰 때 자주 인용된다.
+ 
+## 논쟁과 쟁점
+본문의 뜻을 두고 큰 논쟁은 없다. 쟁점은 대부분 축도로 쓰는 방식에 있다.
+ 
+- **어미의 문제**: 한국 교회에서는 끝맺음을 "있을지어다"로 할지, "축원하옵나이다"로 할지가 오래 논의되었다. 앞쪽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을 선언하는 말로 이해한다. 뒤쪽은 복을 비는 기도로 이해한다.
+- **누가 하는가**: 다수 교단은 축도를 안수받은 [[목사]]의 직무로 정한다. 그래서 목사가 없는 모임은 주기도문으로 마치는 경우가 많다.
+ 
+## 한국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비롯한 대부분의 공예배는 목사가 두 손을 들고 이 구절로 [[축도]]를 하며 끝난다. 이때 "지금부터 영원토록" 같은 말을 덧붙이기도 한다. 일부 교회는 [[민수기 6장 22-27절]]의 아론의 축복을 대신 쓰거나 함께 쓴다. [[개역개정]]의 "성령의 교통하심"이라는 표현은 축도 문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 
+## 함께 읽을 구절
+- 민수기 6:24-26 — 아론의 축복
+- 마태복음 28:19 —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주는 세례
+- 고린도전서 12:4-6 — 같은 성령, 같은 주, 같은 하나님
+- 고린도전서 1:9 — 그리스도와 "교제"하도록 부르심
+- 에베소서 4:4-6 — 한 성령, 한 주, 한 하나님
이 판의 전체 내용

문맥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고린도후서의 마지막 구절이다. 13장 앞부분에서 바울은 세 번째 방문을 앞두고 교회에 스스로를 돌아보라고 경고한다. 이어 서로 위로하고 뜻을 같이하라는 권면(13:11)과 문안(13:12)을 건넨 뒤, 이 축복으로 편지를 맺는다. 한글 성경과 그리스어 원문 비평본은 이 구절을 13장 13절로, 영어권 성경 다수는 13장 14절로 매긴다. 앞의 문안 구절을 하나로 묶느냐 둘로 나누느냐에 따른 차이일 뿐 내용은 같다.

해석

  • 삼위일체적 읽기: 삼위일체 교리를 고백하는 교단들은 이 구절을 성부·성자·성령을 한 문장에 나란히 놓은 초기 증언으로 본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것이 정리된 교리라기보다 세 위격을 함께 부른 표현이며, 뒤에 교리가 형성되는 근거가 되었다는 설명이 많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먼저 말한 것은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다는 뜻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 "교통하심"의 뜻: 그리스어 '코이노니아'(나눔, 함께함)를 옮긴 말이다. 성령이 신자들 사이에 이루시는 교제로 보는 읽기와, 신자들이 성령께 함께 참여함으로 보는 읽기가 있다. 두 뜻을 모두 담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새번역은 이 말을 "사귐"으로 옮겼다. 이 개념은 성도의 교제를 다룰 때 자주 인용된다.

논쟁과 쟁점

본문의 뜻을 두고 큰 논쟁은 없다. 쟁점은 대부분 축도로 쓰는 방식에 있다.

  • 어미의 문제: 한국 교회에서는 끝맺음을 "있을지어다"로 할지, "축원하옵나이다"로 할지가 오래 논의되었다. 앞쪽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을 선언하는 말로 이해한다. 뒤쪽은 복을 비는 기도로 이해한다.
  • 누가 하는가: 다수 교단은 축도를 안수받은 목사의 직무로 정한다. 그래서 목사가 없는 모임은 주기도문으로 마치는 경우가 많다.

한국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비롯한 대부분의 공예배는 목사가 두 손을 들고 이 구절로 축도를 하며 끝난다. 이때 "지금부터 영원토록" 같은 말을 덧붙이기도 한다. 일부 교회는 민수기 6장 22-27절의 아론의 축복을 대신 쓰거나 함께 쓴다. 개역개정의 "성령의 교통하심"이라는 표현은 축도 문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함께 읽을 구절

판때고친 사람요약글자 수
#10652026-10-04 15:46AI 초안AI 초안 (claude-opus-5-5)1,290